2011.7.4. 월요일 오후 여주 신륵사 앞 남한강 풍경..
경기도 여주 신륵사를 찾아서...
2011.7.4.월요일
신륵사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천송리 봉미산 기슭에 있는 절.
남한강의 상류 여강의 물이 감싸 안은 봉미산의 남쪽 기슭에 자리잡은 사찰이다.
일반적인 사찰이 깊은 산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과는 달리
신륵사는 푸른 물줄기와 드넓은 모랫벌 그리고 넓은 들판이 있는 곳에 있어
그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특히 남한강 물이 굽이치는 강가에 서 있는 다층전탑은 운치가 빼어나다.
신라 진평왕(眞平王) 때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고려 말인 1376년(우왕 2) 나옹(懶翁) 혜근(惠勤)이
머물렀던 곳으로 유명한데, 200여 칸에 달하는 대찰이었다고 하며,
1472년(조선 성종 3)에는 영릉 원찰(英陵願刹)로 삼아
보은사(報恩寺)라고 불렀다.
신륵사로 부르게 된 유래는 몇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 하나는 “미륵(혜근을 가리킴)이,
또는 혜근이 신기한 굴레로 용마(龍馬)를 막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려 고종 때 건너마을에서 용마가 나타나,
걷잡을 수 없이 사나우므로 사람들이 붙잡을 수가 없었는데,
이 때 인당대사(印塘大師)가 나서서 고삐를 잡자 말이 순해졌으므로,
신력(神力)으로 말을 제압하였다 하여 절 이름을 신륵사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려 때부터 벽절[甓 寺]이라 불려지기도 하였는데,
이는 경내의 동대(東臺) 위에 있는
다층전탑(多層塼塔)을 벽돌로 쌓은 데서 유래한 것이다.
이 절의 중요문화재로는
보물 제180호인 조사당(祖師堂),
보물 제225호인 다층석탑,
보물 제226호인 다층전탑,
보물 제228호인 보제존자석종(普濟尊者石鐘),
보물 제229호인 보제존자 석종비(普濟尊者石鐘碑),
보물 제230호인 대장각기비(大藏閣記碑), 보물 제231호인 석등이 있으며,
유형문화재로는
극락보전(極樂寶殿) 과 그이외의 부속건물로 구룡루(九龍樓) ·명부전(冥府殿)
·시왕전(十王殿)·산신당·육각정 등이 있다. 네이버백과사전
세심정(洗心亭)
세속에서 더러워진 마음을 세심정에서 물 한 모금으로 깨끗이 씻어내고...
사찰앞 남한강변 바위에 세워진 정자 강월헌으로 가는 길로 먼저 들어 선다.
강월헌(神勒寺 江月軒)
6각형의 정자로 남한강변에 가파른 바위 위에 세워져 있다.
주변 경치가 뛰어나 남한강의 물줄기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현재 위치는 신륵사에서 입적한 고려 말의 고승 혜근(惠勤, 1320~1376)의
다비 장소였는데, 그의 문도들이 정자를 세우고 혜근 생전의 당호인
강월헌이라고 이름 붙였다.
본래의 누각은
혜근의 다비를 기념하여 세운 3층석탑과 거의 붙어 있었으나
1972년 홍수로 옛 건물이 떠내려가자
1974년 3층석탑보다 조금 더 아래쪽에 철근과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다시 지었다고 한다.
신륵사 삼층석탑
화강암을 깎아 만든 3층탑으로
고려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탑이다.
현재 이 곳 여주신륵사 강변 암반에 위치해 있다.
강변과 잘 어울어져 운치가 있어
탑을 중심으로 여러방향에서 탑를 많이 담았다.
여주 신륵사 다층전탑(驪州 神勒寺 多層塼塔)
아래로 한강이 굽어보이고
강 건너 멀리 평야를 마주하고 있는 경치좋은 바위 위에
이 전탑이 세워져 있다.
전탑(塼塔)이란 흙으로 구운 벽돌로 쌓은 탑을 이르며,
우리나라에서는 경기도와 경상북도 안동지역에서 몇 기가 남아 있다.
탑은 기단(基壇)을 2단으로 마련하고,
다시 3단의 계단을 쌓은 후 여러 층의 탑신(塔身)을 올렸다.
기단과 계단은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며, 탑신부는 흙벽돌로 6층까지
쌓아 올렸는데, 그 위에 다시 몸돌 하나를 올려놓고 있어
7층같아 보이기도 하는 애매한 구조이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전탑과 달리 몸돌에 비하여
지붕돌이 매우 얇아 전체가 주는 인상이 사뭇 독특하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1∼3층이 2단, 4층 이상은 1단이며,
지붕돌 위로도 1층은 4단, 2층 이상은 2단씩의 받침을 두었는데
이 또한 특이한 형태이다. 꼭대기에 머리장식이 있기는 하나 얇다.
탑의 북쪽으로는 수리할 때 세운 비가 전해오는데,
거기서 ‘숭정기원지재병오중추일립(崇情紀元之再丙午仲秋日立)’이라는
연대가 있다. 조선 영조 2년(1726)을 뜻하지만 이 때 다시 세워진 것이므로,
지금 탑의 형태는 만들 당시의 원래 모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벽돌에 새겨진 무늬로 보아도 고려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출처:문화재청
신륵사 대장각기비(神勒寺大藏閣記碑)
대장각기비는 높이 133cm, 폭은 88cm로서 비신 둘레에는
이를 보호하기 위해 돌기둥을 세워놓고 있다.
현재 이 비는 신륵사의 동쪽 언덕 위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는 목은 이색이 공민왕과 부모의 명복을 빌고자
나옹선사의 제자들과 함께 발원하여 대장경을 인쇄하고
이를 보관하기 위한 2층의 대장각을 지었다.
비신은 좌단이 깨어져 몹시 손상되어 글자를 알 수 없고
따라서 이 비를 세운 연대를 밝힌 부분에도 손상이 있어
이를 알 수 없으나 대체로 우왕 9년(1383)으로 추정되고 있다.
비문은 자경 2cm의 해서(楷書)로
예문관제학 이숭인(李崇仁)이 짓고 진현관제학 권주(權鑄)가 썼다.
뒷면에는 대장경 인쇄와 대장각 건립에 참여한
승려와 신들의 명단이 적혀 있다. *출처;여주타임즈
신륵사 김병이 공덕비각..후면
정면
신륵사 다층석탑(神勒寺多層石塔)
다층석탑은 극락보전 바로 앞에 아담하게 서 있는 대리석 석탑으로
매우 아름다운 용과 구름 문양, 연꽃 문양을 남기고 있다.
현재 탑의 위치는 사찰의 구조로 볼 때 처음에 만들어졌던
원래 위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탑의 형태를 살펴보면 탑과 지면을 잇는 지대석 네면에
모두 연화문을 조각하였으며,
이 지대석과 본탑의 몸체를 구분하는 갑석에도 역시 연화문을 새겨 넣었다.
탑의 아랫부분 몸체에 섬세한 필치로 조각된 비룡문과 구름무늬는
그 기법이 매우 능숙하고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신륵사 극락보전(神勒寺極樂寶殿)
극락보전은 고려말 1379년(우왕 5) 나옹(懶翁) 선사 입적 후
중창되었고, 1440년(세종22)에 중수되었다가
1473년(성종4)에 대대적인 중수 내지 신축이 이루어졌다.
현재의 극락보전 건물은 1797년(정조21)에 시작하여
3년만인 1800년에 완공됐다.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을 주불전으로 하는 절에 비해서
극락전을 주불전으로 하는 절이 많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웅전 다음으로 많은 법당이며 극락정토왕생의 신앙이
강했음을 읽을 수 있다.
극락보전 정문 바로 안쪽 상부에는 기이한 현판이 있다.
글씨는 '천추만세'(千秋萬歲)라 되어 있으며 나옹화상의 글씨라고
구전되고 있다. 이 현판은 이상하게도 입체감을 나타내고 있어
보는 위치에 따라 글씨가 달라 보이는 특이함을 나타내 흥미롭다.
신륵사 극락보전, 천년 만에 해체.. 현재 복원 공사중으로 어수선하다.
조사당 (祖師堂)
불교 각 종파에서 조사나 절의 창건자, 역대 주지 등의 진영 또는 위패를 모신 집.
조사당은 절에서 덕이 높은 승려의 초상화를 모셔놓은 건물로,
신륵사 조사당에는 불단 뒷벽 중앙에 나옹을,
그 좌우에는 지공과 무학대사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조선 전기 예종 때 지은 것으로 보이며,
낮은 기단 위에 앞면 1칸·옆면 2칸으로 세웠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는 장식구조는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데,
이러한 구조를 다포 양식이라 한다.
앞면은 6짝의 문을 달아 모두 개방할 수 있게 하고,
옆면은 앞 1칸만 문을 달아 출입구를 만들어 놓았다.
조선 전기의 조각 수법을 보이고 있으며
규모는 작지만 균형이 잘 잡힌 아담한 건물이다.
신륵사 범종각 [神勒寺梵鐘閣]
기둥과 목책이 있는 사각의 단층 건물로 신륵사에서 범종을 보관하는
전각이다. 내부에는 범종, 법고, 운판, 목어 등 불교에서 말하는
사물이 조성되어 있다.
범종은 일체 중생이 종소리를 듣고 번뇌에서 벗어나
지혜를 더하고 깨달음을 얻게 하는 데 그 의미가 있으며,
법고는 축생의 무리에게
목어는 물속 생명에게
운판은 하늘을 나는 생명에게
석가의 진리를 전하여 해탈·성불하도록 바라는 의미가 있다.
아침·저녁 예불 때 법고, 목어, 운판, 범종 순서로 친다.
출처:네이버 백과
오후시간, 여주노인복지관에 하모관련 볼일이 있어 갔다가
볼일 끝나고 그 곳에서 가까이에 있는 신륵사를 둘러 보게 되었습니다.
신륵사 주변엔 하루 나들이로 알차게 둘러 볼 여러 관광지가 있는데,
시간이 모자라 신륵사만 잠시 둘러 보고 왔습니다.
고달사지, 목아불교박물관, 영월루, 영릉, 명성황후 생가는
다음에 하루 날잡아 다 둘러 보기로 하고 신륵사만 안내합니다.
1일 나들이 일정에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신륵사 가는길
*버스: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영동선여주행 동부고속버스
첫차06시30분부터(30-40분 간격 1시간10분소요)
동서울터미널에서 여주행 직행버스
첫차07시30분부터(1시간간격 1시간30분소요)
*버스:여주 버스 터미널앞도로정류장에서 신륵사행 버스 이용
(1시간간격 10분소요)
*대중교통 : 여주읍에서 시내버스 10분,
택시이용(3,500원~4,000원) 5분정도 소요
*자가용 :
경부,중부고속도로 ⇒ 영동고속도로 여주톨게이트 ⇒ 우회전(37번국도이용)
⇒ 4㎞직진후 터미널사거리에서우회전 ⇒ 1.5㎞직진후여주대교
⇒ 여주대교 건너서 곧바로 우회전 ⇒ 신륵사(여주톨게이트에서신륵사매표소까지7㎞)
*자 가 용 : 서울 ⇒ 양평 ⇒ 여주 시내진입전 도요단지 경유 ⇒ 신륵사
*자 가 용 : 서울 ⇒ 성남 ⇒ 광주 ⇒ 이천 ⇒ 여주 시내 ⇒ 신륵사
신륵사 문화재 관람료
구분 어른 청소년,중고생 초등학생
개인 2,200원 1,700원 1,000원
단체 1,800원 1,500원 800원
* 단체는 30명이상
* 관람시간 일출후부터 일몰시까지 휴무일은 없음
집으로 집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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